프로젝트 소개
일할 때, 쉴 때, 누군가를 만날 때 — 우리는 늘 의자에 앉습니다. 너무나 익숙한 이 사물은 동시에 우리의 몸과 자세, 일상의 리듬을 설계하는 구조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의자에 앉아 집중하고, 기다리고, 때론 멍하니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게 의자는 보이지 않는 태도를 만들어냅니다.
<체계화된 사물 – 의자>는 여섯 개의 산업용 로봇팔이 조각난 의자 부품을 조립하고 해체하는 키네틱 퍼포먼스입니다. 각각의 로봇팔은 두 개의 다리와 기둥, 하나의 시트와 등받이를 쥐고, 약 4~5분간 이를 반복적으로 배열합니다. 이때 재구성되는 형상은 밀리터리 체어, LC1, 체스카 체어 등 20세기 디자인사의 상징적 의자에서 차용된 것으로, 반복되는 조립과 해체 속에서 익숙한 형상은 점차 어그러지고 기능은 모호해집니다.
본 프로젝트는 의자를 단순한 가구가 아닌, 시스템의 일부이자, 시스템이 기능하게 하는 존재로 바라봅니다. 로봇팔의 반복되는 움직임 속에서 기능과 형식은 분리되고, 사물은 끊임없이 형태를 갱신하는 과정 자체로 존재하게 됩니다. 이러한 전환 속에서 우리는 기술, 디자인, 신체가 얽혀 오늘날 일상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새롭게 마주하고자 합니다.
*네덜란드 ‘데 스틸(De Stijl)’ 운동의 대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리트벨트의 밀리터리 체어(Military Chair), 르 코르뷔지에와 동료들이 디자인한 모던 체어 LC1, 바우하우스 출신 마르셀 브로이어의 대표작 세스카 체어(Cesca Chair)는 각각 20세기를 대표하는 디자인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산되고 사용되며, 디자인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크리에이터 소개
시스템디자인랩(System Design LAB)은 기술, 디자인, 동시대 예술의 접점에서 실험을 이어가는 프로젝트 기반의 창작 그룹입니다. 지도교수인 배재혁(team VOID)을 중심으로 신민규, 최예찬, 조영준이 모여 구성되었으며, 키네틱 설치, 로보틱 시스템, 오브제 디자인 등 다양한 전문성을 교류하며, 시스템적 사고와 예술적 탐구를 통해 사물·공간·움직임 간의 관계를 재구성합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자동화된 환경 속에서 인간과 오브제, 인프라가 어떻게 얽히는지 시각적으로 질문합니다.
※ Highlights정지된 의자가 움직임을 가질 때, 우리는 '이동'의 본질을 다시 묻습니다.
일상 속 의자가 산업용 로봇팔에 의해 해체되어 유기적으로 변형되고 연결되는 순간, 우리는 모빌리티의 관점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봅니다. 현대자동차의 모듈화, 안락한 라운지로 재조립되는 차 내 환경은 어떤 형태로 재구성될 수 있을까요? 시스템디자인랩의 실험은 의자의 조립과 해체를 통해, 모빌리티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끊임없이 갱신되는 감각과 일상의 구조로 바라보게 합니다.
Curator's Note
의자는 권력의 상징이자 일상의 도구로, 수 세기에 걸쳐 인간의 신체와 삶을 설계해온 가장 상징적인 구조물이다. 근대 이후, 바우하우스와 같은 디자인 운동은 기능성과 조형성 사이에서 ‘좋은 삶’을 구현하고자 하며, 의자를 실험의 장으로 삼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의자에 ‘앉는’ 것만은 아니다. 디지털 사무환경과 알고리즘 기반의 일상 속에서, 우리는 이미 '앉혀진'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체계화된 사물 - 의자(Systematic Object – Chair)>은 그런 의미에서, 무너진 근대의 사물성과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설계된 구조를, 재조립된 포스트휴먼의 조형 언어를 통해 질문한다.
<체계화된 사물 – 의자>는 6대의 로봇이 하나의 조각난 의자를 구성하고 해체하는 키네틱 퍼포먼스 작업이다. 여섯 개의 산업용 로봇팔은 각각 두 개의 다리와 기둥, 하나의 시트와 등받이 조각을 쥐고, 설계된 시퀀스에 따라 약 4~5분간 이들을 조립하고 해체하며 반복적으로 재배열한다. 이 조각들은 1923년의 밀리터리 체어(Military Chair), 1928년의 LC1, 그리고 세스카 체어(Cesca Chair)처럼 디자인사에서 상징적 위치를 지닌 모델들로부터 파생되었으며, 각각 기능주의와 미니멀리즘, 대량생산 시대의 미학을 상징한다. 로봇 팔의 움직임을 따라 조각들은 유기적으로 결합과 분해를 반복하고, 반복되는 루프 속에서 기능은 조형으로, 조형은 추상으로 이행한다. 익숙한 의자의 형상은 점차 해체되고, 그 기능은 불분명해진다. 이 작품에서 의자는 더 이상 ‘앉기 위한 구조’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적 구조물(processual structure)로 전환된다.
관객이 마주하는 것은 앉기 위한 사물—의자의 형상—이 아닌, 끊임없이 자기 형태를 갱신하는 과정 속의 사물이자 ‘시스템’이다. 이때 주목할 점은 바로 이 과정성(processuality) 자체가 하나의 조형 언어가 된다는 것이다. 해체와 재조립을 반복하는 메커니즘은 형태의 완결을 목표로 하지 않고, 시스템의 존재 조건 그 자체를 나타낸다. 기술이 산업 변화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오브제는 점점 더 세분화되고 구조화되어 간다. 오늘날의 의자는 물리적 구조물이자, 노동의 자세와 시간을 규정하는 산업 시스템의 매개다. 우리가 ‘의자에 앉는다’는 행위는, 시스템이 허용한 시간과 위치에, 생산성을 기준으로 설계된 신체를 위치시키는 일에 가깝다.
본 프로젝트는 기술이 사물을 어떻게 체계화하고 추상화하며, 그것이 인간의 신체와 감각, 시간에 어떤 구조적 재편성을 가하는지를 시각적으로 탐구한다. 이 작업의 핵심은 기술적 정교함이나 완성도가 아니다. 로봇은 마치 인간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듯하지만, 그 안무는 통제를 벗어난 비선형적 감각을 유발한다. 익숙한 디자인 아이콘의 파편은 더 이상 기능도, 상징도 되지 못한 채 공중을 부유하고, 기계는 이 해체의 루프를 반복할 뿐이다. 기능은 의미를 잃고, 조형은 목적을 벗어나며, 기술은 오히려 새로운 불확실성의 감각을 생성한다. 관객은 점점 더 ‘앉을 수 없는 의자’, 또는 ‘앉아서는 안 되는 구조물’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전환은 단지 의자라는 대상에 대한 고찰을 넘어, 오늘날 우리가 소비하고 사용하는 모든 사물이 어떻게 시스템에 포섭되고 추상화되는지를 성찰하게 한다. <체계화된 사물 - 의자>는 사물의 기능과 형태가 하나의 루프 안에서 해체되고 재조정되는 시대, 시스템화된 오브제의 자율성과 그 잔여를 되묻는다. 이 퍼포먼스는 단순한 기계적 반복이 아니라, 우리가 '앉는' 동안 간과해온 권력과 제어의 구조를 시각화하며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의자 위에서 무엇을 만들어 왔는가. 그리고 무엇을 잃어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