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소개
우주에는 아직도 지구를 향해 신호를 보내는 ‘좀비위성’들이 존재합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가장의 근심』에 등장하는 ‘오드라덱(Odradek)’처럼, 쓸모도 이유도 알 수 없지만 사라지지 않고 유령처럼 떠도는, 이른바 좀비위성이라 불리는 이들은 이미 임무를 마쳤지만, 궤도를 떠돌며 미약한 전파를 흘리는 방식으로 남아 있습니다.
<스페이스 오드라덱>은 이러한 좀비위성의 신호를 실시간으로 수신하고, 이를 데이터로 변환해 공간 속 ‘오드라덱’들을 움직이게 하는 사운드 설치 프로젝트입니다. 전시장에는 위성 신호를 감지하고 해석하는 안테나와 출력 장치, 그리고 전파에 반응해 움직이는 조각들이 함께 설치됩니다. 방사형으로 배치된 오드라덱들은 우주 저편에서 오는 신호를 포착하고, 변환기를 거친 데이터는 빛과 소리로 전환되어 공간 전체로 퍼져나갑니다. 이 신호는 정보나 메시지라기보다는, 불완전한 잡음과 부유하는 리듬, 실체 없는 떨림처럼 감각적으로 작동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임무를 끝낸 위성에서 출발하지만, 단순히 쓸모를 다한 기술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목적을 잃은 것들 속에서 새로운 의미와 가능성을 찾으려 합니다. 우리가 평소엔 무심코 지나치는 기술의 잔해나 오래된 시스템의 흔적들은 다시 하나의 감각적인 경험으로 바뀌며, 사람과 기계, 우주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떠올리게 합니다. 기술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어쩌면 또 다른 서사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크리에이터 소개
콜렉티브 브레멘 음악대는 독일 브레멘에서 모인 이상봉, 김보은, 치힘칙(Chi Him Chik)이 함께하는 프로젝트 그룹입니다. 이들은 이번 ZER01NE에서 유령처럼 떠도는 위성 신호를 감각적으로 재해석하며, 비가시적인 존재와 서사를 드러내는 데 주목합니다. 이상봉은 하드웨어 기반 조형과 시스템 설계를 통해 기계적 존재감을 탐색하고, 김보은은 신체와 물질의 경계를 실험하며, 치힘칙은 음향을 감정과 언어의 매개로 삼습니다. 이들이 함께 선보이는 <스페이스 오드라덱>은 기능을 잃은 기술의 흔적과 감지되지 않던 미세한 떨림을 통해, 기술 서사의 이면에 숨겨진 감각과 존재의 가능성을 끌어올립니다.
※ Highlights잊혀진 신호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기술의 가능성을 상상합니다.
한때 도로를 달리던 자동차 부품은 쓸모를 잃어도, 그 안의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흔적을 남깁니다. 현대자동차가 그리는 SDV(Software Defined Vehicle)는 어떤 형태일까요? <스페이스 오드라덱>은 잊혀진 신호를 감각적 경험으로 바꾸어, SDV가 그리는 미래 모빌리티의 무형 네트워크를 떠올리게 합니다. 기술의 한계 너머, 우리는 새로운 감각의 미래를 설계합니다.
*Software Defined Vehicle(SDV): 자동차의 기능과 경험을 기계적 구조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정의하고, 업데이트를 통해 기술 뿐 아니라 차량과 함께하는 감각과 경험까지 계속 새롭게 진화하는 차세대 차량을 뜻합니다.
Curator's Note
우주에는 여전히 지구를 향해 신호를 보내는 ‘죽은 별’들이 있다. ‘좀비위성’이라 불리는 이들은, 궤도에서의 수명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작동불능 상태로 남아 미약한 전파를 흘려 보낸다. 이미 임무는 종료되었고, 데이터는 무의미하며, 목적지도 사라진 상태. 그렇다면 이들은 죽은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형태로 독립한 또 다른 존재가 된 것일까. <스페이스 오드라덱>은 이러한 신호들을 포착하고 교류하는 장치를 제작해, 기술 문명의 이면에 남겨진 잔존물들의 묘한 생명성을 탐구한다. ‘쓸모’라는 기준이 폐기되거나 전환된 지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여전히 ‘있다’고 느끼고, 또 무엇을 새로운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가.
<스페이스 오드라덱>은 궤도를 떠도는 좀비위성의 신호를 실시간으로 수신하고 이를 데이터로 변환하여, 공간 속에 배치된 ‘오드라덱’들을 움직이는 사운드 설치 프로젝트다.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프란츠 카프카의 짧은 소설 「가장의 근심」에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사물, ‘오드라덱’이다. 바퀴살 같은 형체에 실타래를 감은 듯한 모습. 쓸모도 이유도 불분명한 이 존재는, 사라질 듯하면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카프카는 오드라덱을 통해, 기능이 소멸된 이후에도 지속되는 존재감, 즉 무용(無用)의 시간 속에서 발현되는 기묘한 자율성을 포착했다. 본 프로젝트는 이러한 문학적 은유를 인공위성이라는 기술적 실체와 연결 짓고, 고철로 취급되는 시스템 잔여물 속에 깃든 관계성의 흔적을 가시화한다.
전시장에는 실제 좀비위성들이 보내는 신호를 수신·해석하는 안테나, 신호 출력기와 해석기, 그리고 그 전파에 반응해 움직이는 키네틱 조각인 오드라덱들이 설치된다. 전시장 바닥에 방사형으로 놓인 이 오드라덱들은 우주 저편의 잔향을 포착하고, 변환기를 거친 데이터는 빛과 소리로 전환되어 퍼져나간다. 그 출력은 명확한 메시지도, 즉각적으로 이해 가능한 정보도 아니다. 오히려 불완전한 잡음, 부유하는 리듬, 미세한 진동으로서 존재한다. 이는 ‘쓸모 없음’이 지닌 존재론적 질량을 직감하게 하며, 기능이 제거된 사물에도 여전히 감각되고 기억될 수 있는 생명력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속 모노리스가 인간의 인식과 진화를 불확실하게 자극하듯, 정답 없는 신호들은 우리의 이해가 닿지 않는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가 기억과 존재의 귀환을 통해 실재와 환영 사이를 흐릿하게 만들듯, 좀비위성의 잔류 신호는 이미 지나간 ‘기능’의 유령이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내러티브의 씨앗이 된다. 〈스타트렉: 더 모션 픽처〉(1979)에 등장하는 NASA의 보이저 6호가 외계 문명에 의해 개조되어 ‘비져(V’Ger)’라는 자율적 존재로 귀환한 것처럼, 기술이 기능을 초과할 때 또 다른 존재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은, 이 작업의 상상력과 깊게 공명한다. 우주적 외로움과 정체성의 균열을 다루는 이 서사들은 궤도를 떠도는 존재들이 단순한 기계가 아닌, 지속되는 관계의 주체로 재구성될 수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임무와 기능의 틀을 벗어난 존재들은 예측 불가능성과 해석 불가능성을 통해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기술은 본래 유용성을 목표로 하지만, 그 잔여물과 부산물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기술의 본질과 인간의 위치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스페이스 오드라덱>은 ‘쓸모 없음’과 ‘남겨짐’을 기술 문명의 부산물이 아닌 하나의 생태이자 서사로 읽어낸다. 기술이 버린 것들의 잔재를 다시 들여다보는 이 시도는, 폐기와 지속, 의미의 해체와 재구성 사이에서 존재의 새로운 궤도를 상상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작품은 인간–기계–우주라는 거대한 관계망 속에서 ‘존재’의 조건을 묻는다. 언젠가 우리의 기술 역시, 궤도 속 오드라덱처럼, 기능을 잃은 채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부유하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그 존재를 어떻게 기억하고, 또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