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소개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인간 중심의 감각으로만 시간과 생명을 이해해왔습니다. 하지만 생명마다 시간이 흐르는 방식은 다르며, 그 차이를 감지하고 이해하는 감각은 아직 낯설기만 합니다. 〈Consonance〉는 인간이 쉽게 체감하기 어려운 생명 고유의 시간을 ‘듣는’ 방법을 탐구합니다.
〈Consonance〉는 박테리아의 작용에 따라 서서히 생분해되는 LP를 중심으로 구성된 ‘살아있는’ 악기이자 인큐베이터로 기능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악기’에서는 두 개의 소리가 발생합니다. 하나는 생분해 LP의 소리, 다른 하나는 빛과 레코드의 상호작용에서 생기는 소리로, LP의 분해 과정은 소리를 일그러뜨리고, 이 변화는 광학 장치와 연동되어 빛의 떨림과 함께 시청각적 공명을 만들어냅니다. 예측할 수 없는 박테리아의 리듬은 소리와 빛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관객은 그 흐름 속에서 생물적 시간의 감각을 경험하게 됩니다.
〈Consonance〉는 기술이 생명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에 감응하고 조율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하게 합니다. 여기서 ‘듣는다’는 것은 단순한 청각적 행위가 아니라, 생명의 리듬에 몸으로 반응하는 감각의 태도를 뜻합니다. 기술 없어도, 생명과 우연, 시간의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날 수 있는 조용한 감각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살아있음’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됩니다.
* Consonance: 일치, 조화, 화음 등 서로 다른 리듬과 흐름이 어울려 공명하는 상태를 뜻하는 단어로, con- (함께)와 sonare (울리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본 프로젝트에서는 인간의 감각을 넘어, 생명과 시간의 낯선 리듬이 함께 울려 퍼지며 새로운 ‘살아있음’을 만들어내는 순간을 가리킵니다.
크리에이터 소개
제로원 알럼나이인 Psients x Jeffrey Jehwan Kim팀은 바이오아트, 사운드,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기술 안에서 드러나는 생명의 움직임을 탐구하는 프로젝트 그룹입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엘리아스 케말리(Elias Chemali), 이소영과 함께하며 감각과 생명에 대한 실험을 한층 확장합니다. 특히 감각과 시간, 생명과 기술 사이의 ‘공진(共振)’을 핵심 키워드로 삼아 전통적 조형 언어를 넘어서는 새로운 감각 환경을 제안하며, 〈Consonance〉를 통해 기술과 생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존할 수 있는 예술적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 Highlights인간이 아닌 존재의 움직임과 시간의 흐름속에서, 우리는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상상합니다.
〈Consonance〉는 박테리아의 리듬에 따라 서서히 분해되는 LP를 통해, 기술이 생명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에 감응하며 공명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기술은 종종 자연의 방식에서 영감을 얻어, 생명의 리듬을 닮은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생명과 기술의 공진을 통해 자연을 닮은 지속 가능한 시스템으로 전환을 상상해 봅니다.
Curator's Note
인간은 자신이 체감하고 감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시간과 생명을 이해해왔다. 그러나 살아있는 존재들의 시간성은 저마다 다르며, 그 차이를 감지하고 감응할 수 있는 감각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Consonance〉는 이러한 인식의 경계를 허무는 데서 출발한다. 생물학적 시간과 기술적 시간, 그리고 예술적 시간의 어긋남 위에서, 우리는 무엇을 ‘살아있다’고 느끼고, 무엇을 들을 수 있을까? 본 작업은 그 질문에 답하기보다, 인간이 체감하지 못하는 생명 고유의 시간성과 그 흐름을 감지할 수 있는 하나의 시뮬레이터이자 악기로 구성하며, 감각의 확장을 위한 실험적 환경을 조성한다.
박테리아에 의해 점진적으로 생분해되는 LP를 연주하는 ‘살아있는’ 인큐베이터이자 악기인 프로젝트 〈Consonance〉는 소리와 빛의 감각, 그리고 그 시간적 흐름을 조형화한다. 생분해가 진행되는 LP의 소리와 그 LP와 빛의 상호작용에서 생기는 소리의 ‘조화’를 듣노라면, LP는 단순한 재생 매체가 아니라, 물질이 분해되는 과정 그 자체를 음악적 경험으로 전환하는 매개체로 작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LP는 점차 분해되고, 이 변화는 소리의 물리적 조건과 빛의 투과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운드는 박테리아의 소화 작용이 만든 리듬에 따라 일그러지고, 그 변화는 공간에 설치된 빛의 감응 장치와 함께 하나의 키네틱-시청각적 퍼포먼스로 구현된다. LP가 사라짐에 따라 연주 역시 끝나며, 이 ‘종말’은 기계적 종료가 아닌 빛의 통과, 음향의 왜곡, 그리고 변화하는 재료의 감각을 통해 생명과 기술, 시간과 우연성 사이의 다층적 관계를 드러낸다.
다년간의 연구를 기반으로 개발된 이번 프로젝트는 단지 박테리아를 도구화하거나, ‘생명’이라는 개념을 낭만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거부한다. 오히려 기술의 효율성이나 영속성에 대한 환상, 즉 기술 페티시즘의 허무를 직시하며, 우리가 만들어낸 문제를 다시 기술로 ‘해결’하려는 반복적 충동을 비트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생분해’라는 키워드는 쓰레기, 오염, 지속가능성 같은 환경 의제를 상기시키지만, 여기서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통제 불가능성’을 실험한다. 분해되는 LP의 소리, 또 빛과의 상호작용에서 생성된 사운드가 공명하는 ‘살아있는 악기’로서의 〈Consonance〉는 생명을 길러내거나 보호하는 인큐베이터를 넘어,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생명과 마주하는 시뮬레이터로도 기능한다. 소리와 빛, 생명과 기술, 생성과 소멸이 조율되는 이 과정은 단순한 인터랙션이 아니라 ‘조율된 공생’의 형식이다.
폴린 올리베로스가 제안하는 ‘딥 리스닝(Deep Listening)’처럼, 본 프로젝트는 생명이 들려주는 미세한 리듬을 ‘듣는 법’을 질문하고 소리의 구조만이 아니라 그것이 생성되는 환경, 감각의 밀도, 그리고 듣는 몸의 주의를 함께 확장시키고자 한다. 오론 캣츠와 이오나트 주르가 ‘따뜻하게 유지하기 – 시뮬레이터로서의 인큐베이터(Keep it Warm – Incubators as Simulators)’에서 주장하듯, 생명과 기술이 접촉하는 시뮬레이션의 공간은 언제나 모호하고 정치적이다. 인큐베이터는 단순한 배양기가 아니라,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삶’과 마주하는 시청각적 실험실이 되며, 〈Consonance〉는 생물적 시간에 기반한 박테리아와의 관계 맺기를 통해, 기술과 생명 사이의 ‘균형’보다는 공진하는 불균형 상태를 감각화한다.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결국 ‘누구의 삶을 감각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도 연결된다.
조화 – 공명 – 일치로 이어지는 이번 프로젝트는 궁극적으로 ‘음악’이라는 감각 매체를 통해, 기술과 자연, 통제와 우연, 감각과 시간 사이의 조율 가능성을 탐색한다. 관객은 단지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되어가는 과정을 함께 목격하게 되며, 이때 감상은 정보의 수용이 아니라, 생명의 ‘증여’를 체험하는 사건이 된다. 〈Consonance〉는 그처럼 조용하고도 명백한 물질적 퇴장을 통해, ‘살아있음’이란 무엇인가를 가장 낮은 소리로 질문한다. 그리고 이 질문은 비단 생명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기술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그 안에서 감각하는 방식 전체에 대한 비평적 성찰이 된다.